본래 목표로 했던 인천<->전주가 인천->전주로 되어버렸네요.
23일

출발 전에 모여서.
이렇게 모여 작전역 근처에서 출발했다.
여행이라곤 하지만 페달을 밟는건 외에 할 건 없다.
간석오거리역 쪽에서 국도로 빠져나가는데 매우 이른 시간이라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학생 같은 얼굴은 아니었지만 교복을 입고 있으니 학생이겠지.
아무튼 대학생이라는걸 실감하며 국도로 빠져나갔다.

첫 휴식.
사람 사는 곳도 아닌데 계속 인천이란다.
인천도 넓긴 넓은가보다.

인천을 빠져 나가 시흥 접근!
이제야 여행이 시작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헐킈 절라 덦네'
또 휴식.

시흥을 지나 안산에.

위 사진의 맞은 편.
휴식이 잦은가도 싶지만 말이 휴식이지 체력이 조금도 회복되는 느낌은 없다.
말그대로 잠시 쉬어갈 뿐

엉덩이가 닳는듯한 감각을 참지 못하고 잠시 끌어서 감.
그리고 점심을 먹을때쯤 하여 수원에 도착하였다.
에리카의 지인으로부터 밥을 얻어먹고 쪼금 노닥거리다가 다시 출발했다.

수원에서 나와 오산에 들어섰다.
시내에 들어섰을땐 이미 어둑어둑해져서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어느 역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평택 초입께에 있던 역이었다.
그리하여 지하철을 타고 아주 간단히 천안에 도착.
맥주를 사들고 내 자취방으로 들어가는데 워낙 좁아 자전거를 모시는게 큰일이었다^^
상콤하게 샤워를 하고 에어컨+선풍기 바람을 쐬는데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내가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니.
그리고 닭을 시켜 사왔던 맥주를 풀었다.
엔트리는 후치아이스 오렌지, 밀러, 하이네켄, 스텔라아르투아. 그리고 언제나처럼 버드와이저.
24~26일
모두 의욕을 상실한 채 퍼질러 잤다.
저녁땐 330ml 한 캔에 3000원 가까이 하는 조냉 비싼 기네스를 마셔봤다.
기포가 미세한 거품을 내고 쏘는 맛이 없는 흑맥주였는데 조금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돈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훗날 조금의 여유가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컴퓨터도 없고 해서 하나TV로 애니를 보는데
좀비 이새키는 그만 보자는 슬레이어즈NEXT를 계속 틀어대고 지랄.
결국 다 봤땈ㅋ 개새
에리카는 사사라짱 부등켜 안고 지랄ㅋ
그리고 26일 출발하려던 걸 늦잠 자느라 27일에 출발하기로 했다.
나는 5시 제 시간에 맞춰 일어났는데.. 나쁜넘들
20분간 울려대는 알람에도 꿈쩍 않고 잔다. 무서운 놈들
27일~28일
집에서 나와 조치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조치원에 일찍 도착했다.

홍대 조치원캠 입구의 조형물.
하늘을 가리키는 화살표? 무척 애매한 모양이었다.

바닥에 그려져 있던 그림.
도대체 머리 좀 좋은 놈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튼 학식으로 싸게 점심을 때우려고 했으나 식당이 닫아서 실패.
그래서 바로 코 앞에 있는 고대로 갔다.

고대 서창캠 입구 앞.

학생회관? 앞.
여기도 식당이 문닫아 실패.
나가려는데 웬 개들이 사람 따라다닌다.
늬들은 고려견?

웬 새도.
여긴 동물원이냐
결국 인근의 식당 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또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조치원쪽에서 본 고양이 시체와 반대쪽에서 자전거 타고 오는 나시티의 형씨들 삼인방이 기억에 남는다.
참새 사체는 너무 많이 봐서 덜 인상적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달팽이의 빈 집들과 참새 사체들을 보며 열심히 밟으니 대전에 들어섰다.

이걸 보니 기운이 났다.
똥꼬가 제 기능을 못 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는데
이 석상을 보니 목표 지점에 도달했구나 싶어 힘이 절로 난다.
그리고 시내에 들어서게 되면 없던 힘이 생긴다. 왠지는 모르겠으나 힘이 넘친다.
우리는 유성 온천을 찾아 계속 밟았다.

유성구? 암튼 유성.
기둥 꼭대기에서 페달을 밟는 재미있는 조형물이 있었다.
어떻게 유성엔 왔는데 온천 유성의 숙박 요금에 떡실신 당한 우리는 근처의 적당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그날 밤이 '100분 토론' 하는 날이었는데 그걸 보려고 대기중이었다가 셋 다 잠들었다나 뭐라나.

다음날 충남대 식당.
1500원짜리 학식(면류)을 먹었다.
광역시에 있어서 그런지 학교가 깔끔하고 멋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충대에 한번 지원해보는 건데..
대전을 나가려고 하는데 우릴 맞이한 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반복이었다.
결국 거의 끌다시피 시내를 빠져나가고도 한참을 달렸는데
보이는 건 대전시의 환송 문구.
이 뭐..
하지만 자전거 여행을 하는 우리에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계속 밟을 수밖에.


그러던 중에 어떤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계시와도 같이 사고를 지배했다.
해질 무렵은 아니지만 오후 늦은 시각이었고 다음날 비 온다는 소식도 있었으니
빨리 전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기차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던 듯 하다.
"좀만 더 가면 논산인데 논산 가서 탈까?"
"어차피 기차 탈 거면 그냥 여기서 타자"
"근데 저길 어떻게 건너 가지?"
어느새 기차 타는 건 확정되었고 목적지가 전주에서 논산으로 바뀐지 오래였는데 그새 계릉역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역사에 갈 방법을 모색했다.

몇개의 지하 터널을 건너보고 길을 찾았다.
무작정 걷던 중, 웬일인지 이런 길을 가는 차 운전사분께 길을 물어본 뒤에야 확신하고 갈 수 있었다.

아저씨가 가르쳐 준 건널목.
태어나서 처음으로 건너본다.

계릉->전주 가는 차표
왜 이 비싼 요금을 받아놓고 검사도 안하냐고.

전주역.
역사 같지 않은 이 건물이 역사란다.
그러고보니 전주엔 이런 기와 건물이 많은 듯 하다.
그리고 짐을 풀어놓고 이번에도 역시 술을 사들고 왔다.
전주에서의 엔트리는 크루저 블루베리, KGB 레몬, 호가든. 언제나처럼 버드와이저와 그리고 하이트 핏처.

비누맛 호가든. 다신 먹기 싫어
28일~1일
28일, 본격 폐인 생활이 시작된다.
집에 컴퓨터도 있는데다, 밥먹으려고 학교 앞으로 가면 없는 것 빼고 다 있으니 별 수 없다.

산같은 만화책더미.
매우 크고 적절한 책방이 있으니 이것도 별 수 없고.

키보드도 준비되어 있으니 이것도 별 수 없..나?
사실 하루종일 EFZ와 비상천만 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안한 듯.

전북대 (구) 정문.
학교가 개념 없이 커서 사진 찍는 건 포기했다.
원래 안찍었지만 찍고 싶은 마음 조차 들지 않는다. 고나 할까. 정말이다.
학교가 웬만한 도시의 동 하나 크기이니 답이 안나오는 것도 사실.

싸고, 맛좋고, 양도 많다!

도돈파치 대왕생.
이것만 1400원 어치는 밀어넣은 것 같다. 그런데 왜 1면 보스를 못 잡을까..?
오락실이 꽤 컸는데 격게 코너가 따로 있고 슈팅겜이 많은게 인상적이었다.
격게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사실 오락실엔 잘 안다녀서 할만한 게 없고
슈팅은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역시나 오락실에선 그나마 부담 적게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근처 공원.
밤중에 다리가 빛나는게 인상적이었는데 카메라를 깜빡해서...
어느 땐 분수 쇼도 한단다.

풀밭같지만 무수한 연꽃들이 떠 있는 호수.

피다 만 연.
시기가 부적절했나.
30일날 에리카는 아버지로부터 연락 받고 개인 사정으로 먼저 광주로 떠났고
우린 남아서 뻘짓과 폐인짓 계속..

4일간 폐인짓에서 나온 잔해들..

만두집에 만두 메뉴는 세가지 뿐이더라.
다음 날 이렇게 먹고 저녁도 대충 냉동실에 있던 고기로 저녁 때우고 그 다음날.
2일

1일날 그저 귀찮아서 뒤로 미뤘더니 비가 억수로 쏟아져서 낭패다.
12시 40분 차로 끊고 버스에 탔다.
사실 난 10시에 일어났는데 이새퀴가 안일어나고 버티다가 11시에 '슬슬 준비해볼까'하면서 일어났다.
그 결과로 식사 후에는 이미 12시가 가까워져서 서둘러 준비하고 나가자마자 택시 잡아 타고 그렇게 고속 터미널에 도착했다.
비가 쏟아져서 낭패란 건 안그래도 급박한데 비까지 와서 기운 뺏다는 것.
그러니까 진작 일어나라니까 자슥이...
아무튼 이렇게 버스에 타 4시간만에 인천에 도착했다.
4시간만에.
4시간이면 갈 거리를 4일 걸려 가고, 있는 힘 없는 힘 들여 여행하는게 자전거 여행의 묘미인가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이 흐지부지 끝난 건 조금 아쉽다.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재도전 해보고 싶다.
가급적 여름은 피해서, 또 스트라이다가 아닌 좀 더 적당한 자전거로.
확실히 스트라이다는 장거리엔 부적절하다. 스트라이다가 있을 곳은 도시 속이라고 새삼스레 깨달았다.